오늘은 최소 20명 살해한 유영철에 대해 알아보자
유영철 얼굴 연쇄살인범 식인 출소 근황
1970년 4월 18일생
범행기간
1988년 8월
2004년 7월 15일
인명피해
최소 20명 살해
체격
169cm 70kg
가족
3남 1녀 중 3남
슬하 1남
최종 형량
사형
수감처
대구교도소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20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연쇄살인 이전에도 절도, 강간, 폭력 등 수많은 범죄를 저질러 검거 당시 전과 14 범이었다. 영화 추격자의 모티브가 된 사람이다.
유영철의 엽기적인 범죄 행각으로 인해 사이코패스의 개념이 대중에게 알려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영철 체포되기 30여년 전 김대두의 경우 범죄자의 정신적인 측면을 연구함으로써 이후의 사건들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단 지적이 일부 있었지만 사형이 집행됨으로써 이뤄지지 못했다
그것이 알고싶다 3차례(304회, 499회, 1038회) 유영철에 대해 다룬 바 있다. 1988년 8월 절도로 구속되어 소년원에 들어간 뒤 결국 학교를 자퇴했다. 이후 수차례 절도죄로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잡범이 된 유영철은 1993년 황 씨라는 여자와 결혼했으나 결혼 몇 달 만에 또 절도죄로 교도소에 들어갔다.
출소한 유영철은 1994년 10월 아들이 태어났지만 아침에는 웨딩숍 사진관에서 일하고 밤에는 불법퇴폐 업주들을 상대로 경찰관을 사칭하며 금품갈취를 했다. 1994년 11월 그의 둘째형이 한강에서 투진 자살했다고 기자에게 얘기한 바 있다. 그러다가 98년부터 다시 공무원 사칭, 미성년자강간 등으로 교도소에서 장기간 복역하게 되면서 2000년 12월 이혼을 당하게 된다.
사회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한 유영철은 아내와 아들을 살해하려다 마음을 바꿔 무차별 연쇄살인을 하기로 마음 먹고, 복역 도중 정두영에 대한 자세히 다룬 월간조선 연재기사를 보고 범행수법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2003년 9월 11일 전주교도소를 출소한 유영철은 13일 후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에서 숙명여자대학교 이모 교수와 부인을 살해했다.
이 사건 이후 2004년 7월까지 서울 각지에서 주로 부유층 노인 또는 출장마사지사 여성 등 총 16건의 범행으로 20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살인 수법도 매우 악질적으로 진화해 피해자를 굉장히 잔혹한 방식으로 살해했다. 아래 글은 사건 중 일부만 발췌
2004년 4월 14일 서울 중구 황학동의 도깨비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던 안모 씨(44세,남)를 안 씨는 베스타 승합차로 유인해 살해. 유영철은 2004년 4월 13일 밤, 동대문구 황학동 삼영빌딩 1층 백성프라자약국 앞에서 비아그라와 음란 CD를 판매하는 피해자의 동태를 살피다가 영업을 끝내고 남은 물건을 들고 자신의 베스타 승합차 쪽으로 가는 피해자에게 다가갔다. 위조한 서울지방경찰청장 명의의 경찰관 신분증을 제시하면서 "음비법 위반, 약사법 위반으로 적발하겠다"라고 하면서 피해자의 두 손목에 수갑을 채워 승합차 조수석에 태웠다. 승합차를 운전해 가던 중 피해자가 유영철의 신분을 의심하는 태도를 보이자 피해자를 살려 두었다가는 그간의 살인행각과 경찰관 사칭 행각이 드러날 것을 염려하여 피해자를 살해하기로 결정했다
유영철은 수갑을 채워 피해자를 저항하기 어렵게 만든 다음, 코팅장갑을 낀 손으로 잭나이프를 들고 피해자의 얼굴과 머리, 목등을 마구 찔렀다. 피해자가 죽은 것으로 생각하여 피해자를 뒷좌석 밑에 가로방향으로 눕혀 놓고 옷가지로 덮으려고 하였으나, 죽은 줄로만 알았던 피해자가 피고인을 향해 발길질을 하며 저항하자 다시 잭나이프로 피해자의 허벅지 등을 찌르고 가방에서 꺼내 든 해머로 피해자의 머리를 수회 내리쳐 피해자는 두부손상으로 사망했다.
잭나이프로 피해자를 찌르는 과정에서 실수로 베인 오른쪽 손등 상처의 피가 승합차 안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피를 없애버리기 위해 인적이 드문 곳에서 승합차에 불을 지르기로 마음먹었고 사체에 옷가지와 신문지를 덮어놓고 승합차를 운전하여 다시 자신의 오피스텔에 도착하여 몸에 묻은 피해자의 혈흔 등을 닦고 옷을 갈아입은 후, 승합차를 운전했다. 다음날 새벽 1시에 인천 중구 북성동 소재 삼호석유 주차장에 도착해서 연쇄폭발을 유발하기 위해 2대씩 주차된 유조차량 사이에 위 승합차를 주차시켜 놓고 뒷좌석에 올라탔다
수갑에 묶인 피해자가 살해당하기 직전 피고인에게 저항하기위해 심한 몸부림을 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두 손목에 선명하게 난 수갑 자국을 없애버리는 한편, 피해자의 신원도 확인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잭나이프로 두 손목을 절단하여 이를 비닐봉지에 담았다. 그리고 승합차 안에 있던 신문지와 옷가지를 사체 위에 올려놓고 승합차 안에 있던 라이터로 불을 붙여 그 불길이 피해자의 사체 및 승합차에 옮겨 붙게 했다. 이어 위 비닐봉지에 들어 있는 두 손목을 그곳으로부터 약 300m 떨어진 월미도 횟집상가 앞 방파제 바위틈에 버렸다.
피해자의 시신은 월미도에서 기름탱그에 담겨 불태워졌고 뒤늦게 유가족들이 겨우 몇 점을 수거하여 장례를 치렀다. 그는 평소 노점상 단속 때문에 경찰서를 자주 들락거렸기 때문에 유영철의 경찰 신분증이 가짜라는 걸 단번에 알아보았고 그 점이 유영철을 자극해 살해당하고 말았다. 4형제 중 장남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사건 이후 가정이 풍비박산이 났다. 그의 피살 7개월 후 둘째 남동생이 충격을 이기지 못해 자살했고 다시 8개월 후 막내 남동생도 자살로 생을 마쳤다. 마지막 생존자인 셋째 남동생도 자살을 시도했으나 구사일생하여 현재는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으며 겨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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