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명 1996년부터 2000년 4월까지 10개월 간 9명 총 10명을 살해한 강도살인범 및 연쇄살인범 사건에 대해 알아보자
정두영
1968년 12월 31일
부산 출생
키 164cm
가족
3남 1녀 중 넷째
학력
고졸 검정고시
범죄유형
연쇄살인, 강도살인
범행
1986~2000년 4월
피해
사망 10명, 부상 3명
형량
사형(형집행 무기한대기) 서울구치소
정두영은 부산에서 3남 1녀 중 막대로 출생했다. 그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암으로 투병하고 있었고 정두영이 2세가 되던 해 끝내 사망했다. 남편의 죽음으로 생계가 곤란해진 정두영의 어머니는 아기에게 충분한 관심을 주거나 영양을 공급해주지 못했다. 결국 어머니는 아이들을 삼촌 집에 맡기고 재혼했다. 하지만 정두영이 5살 되던 해 삼촌마저 요란스러운 조카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들을 고아원으로 보내버렸다.
그리고 정두영이 7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가 고아원으로 찾아와 정두영을 새아버지 집으로 데려갔다. 그대로 양친과 성장했으면 좋았겠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경제적 부담과 이부형제들과의 갈등이 커져 정두영은 도로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고아원 안 남자 아이들의 세계는 약육강식의 정글 같아 세면 때리고 약하면 맞는 게 보통이었다. 선천적으로 작은 체구 때문에 놀림과 괴롭힘을 많이 당하던 정두영은 결국 자신을 보호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살아남는 방법은 오로지 '폭력' 뿐이라는 것을 체득하고 말았다. 무학인 정두영은 고아원에서 나온 뒤 범죄를 생계수단으로 삼아 살기 시작했다.
사실 나중에 보살펴 줄 사람인 그의 형 정부영이 나타나긴 했다. 하지만 직업은 금은방 간판을 내건 장물아비였다. 그래서 자신이 돈이 될 만한걸 훔쳐오면 그 형이 팔아치우기로 했다고 한다. 즉 계속 범죄의 길을 걷게 된 것 이 때 그는 그 형에 대한 한 여성을 소개받고 2000년 2월부터 동거에 들어갔다. 그가 살인마의 흉악성을 어찌나 철저하게 숨겼는지 동거녀 및 그녀의 부모는 정두영을 "술, 담배도 안 하고 말수가 적으며 점잖고 매너 있고 성실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게다가 정두영 본인도 얼마나 그 여성을 소중하게 생각했는지 체포 이후 해당 여성이 공범이 아니었나 조사에 들어간다고 하자 극구 부인하고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고 한다.
강도 연쇄살인 범행 과정과 체포
18살이었던 1986년 5월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 돈을 훔치러 들어갔다가 마주친 교사를 흉기로 찌르고 달아나싿. 그로부터 1달 뒤에는 자기를 검문하던 방범대원 김 모 씨(43세)를 골목길로 유인해 가슴을 칼로 찔러 살해해 11년을 복역하고 수감생활 동안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하기도 했고 1998년 6월에 출소했지만 출소 직후 절도로 짧게 6개월 동안 다시 복역한 뒤 1999년 3월 2번째 출소 후 본격적으로 강도 살인을 시작했다. 당시 이미 전과 8 범이었다. 주 영역이 부울경(동남권)이었기에 그가 저지른 연쇄살인을 부산경남 연쇄살인사건이라 부르기도 한다.
출소한 뒤에도 불과 2개월 만에 가정집을 털다가 잡혔다. 그러나 이번에 불구속 처리돼 풀려나자 1개월만인 1999년 6월 2일 부산광역시 부민동의 부산고검장 관사 옆 저택에 침입해 20여만 원을 훔쳐 달아나려다가 마주친 50대 여성 이 모 씨를 욕실로 끌고 들어가 망치로 머리를 수회 내리쳐 살해했다. 이 씨는 해당 집에서 일하던 가정부였다. 이때부터 10개월간 정두영이 저지른 범죄행각은 '불우한 환경과 사회적 소외감이 범죄를 불러왔다'는 식의 해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잔홍성을 보여준다.
정두영은 불심검문에 대비해 빈손으로 다니다가 낮 시간에 부유층 집에 들어가 물건을 훔쳤다. 그러다가 집에 사람이 있으면 그게 부녀자든 노인이든 가리지 않고 죽여버렸다. 집 안에 둔기로 쓸만한 게 있으면 그걸 흉기로 사용했고, 없으면 맨손이랑 발로 죽을 때까지 구타하는 등 살해 수법도 잔혹했다. "왜 그렇게 잔혹하게 죽였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정두영은 "다급해서 글했는데 어쩌면 내 안에 악마가 있는지도 모르겠다"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어떤 사건을 피해자를 둔기로 죽인 뒤 돈을 훔친 강도산인 같고 어떤 사건은 돈 될만한 걸 약간 훔쳐 강도살인으로 위장하고 피해자를 잔인하게 죽인 원한살인 같기도 해서 경찰도 처음에는 몇 건의 사건이 동일범의 소행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그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돈이었기 때문에 금고를 열기 위해 시신 옆에서 무려 2시간 동안 아령으로 이웃집에 다 들릴 정도로 큰 소리가 나게 두들기는 대담성도 보였다. 또 사건 현장에 크기가 다른 2개의 발자국을 남겨놓는 교활함도 보였다.
1999년 10월 2일에는 울산 남구 옥동의 한 2층 단독주택에 집옆 놀이터의 담장을 통해 침입해 집에 있던 50대 어머니 정씨와 20대 아들 안 씨를 각각 안방과 작은 방에 가둔 후 둔기로 수차례 가격해 살해했다. 2000년 3월 11일에는 부산 서구 서대신동 가정집에 침입해 30대 여성 1명과 43세 여성 1명을 야구방망이로 때려 살해했고 운동을 마친 후 나중에 집에 온 또 1명의 여성을 중상이 되도록 때리다가 "아기가 있다. 살려달라"라고 호소하자 "아기 잘 키워, 신고하면 죽인다"는 말과 함께 이불을 덮어씌운 후 살려줬다. 서대신동 가정집에서 금고를 깨고 6700만 원의 금품을 강취하고 도주하는 데 성공했다. 중상으로 맞았던 그녀는 부상이 심했지만 살 수 있었고 이 생존자의 증언 덕분에 정두영의 몽타주가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2000년 4월 8일 부산 동래구 온천동에서 일으킨 사건 '철강회사 회장 부부 살인사건' 은 피해자가 모 철강회사 회장인 재력가라는 점과 피해자의 시신을 누구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한 잔혹성으로 세산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 당시 그는 집에 있던 회장과 조선족 가정부 손 모 씨, 그리고 회장의 친척 할머니를 잔인하게 구타했는데 2명은 사망했지만 75세 할머니가 기절한 것을 정두영이 사망한 것으로 착각하고 현장에 두고 떠나 병원으로 옮겨져 겨우 살아났다. 할머니는 이후 천안에서 체포된 정두영을 보고 범인이라고 확신했으며 정두영이 자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00년 4월 12일 그는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원천동에 위치한 사업가 박모 씨(55세)의 자택에서 인질극을 벌이다가 경찰에 검거됐다. 이 집에 들어온 정두영은 집을 뒤져봐도 돈이 될 만한 물건이 영 나오지 않자 집에 온 여성을 협박해 남편에게 돈을 뽑아 오도록 전화하게 했는데 아내가 평소와는 다른 말투를 쓰는 걸 이상하게 생각한 남편이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 1명이 대신 돈을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형사들은 그가 나오자 가스총을 쐈다. 당연히 집 주위도 포위하고 있었지만 그가 쓰러지지 않고 담을 넘어 옆집으로 도망치는 예상 밖의 상황에 추격전이 펼쳐졌고 다행히 가까스로 체포됐다고 한다.
2001년 1,2심에서 강도살인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상고를 포기하면서 사형이 확정됐다. 1997년 이후 더 이상의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미집행 사형수로 복역 중이며 부산구치소에 복역하다가 대전교도소로 이감됐다. 그리고 장물 처리를 해준 공범인 전당포 주인 김종준과 금은방 주인 형 정부영도 검거됐다. 둘 다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이듬해 만기 출소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와 MBC 히스토리 후에서 방영되기도 했지만 희한하게도 사건 당시와 검거, 판결 시에도 굵직한 역사적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주목받지 못하다가 후일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을 계기고 다시 주목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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