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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기록

이중구 연쇄 성폭행 강간 절도 대전 발바리 사건

오늘은 1998년부터 2005년 7년에 걸쳐 대전을 중심으로 연쇄 강간 피의자 이중구 사건에 대해 알아보자

 

이중구 앞모습

이중구

1962년생

키 157cm

범죄 유형

총 184명 연쇄 성폭행 

판결

무기징역

 

이중구는 1998년 2월부터 2005년 10월까지 7년에 걸쳐 대전을 중심으로 일어난 연쇄 강간 사건의 피의자로 이중구가 성폭행한 것으로 확인된 피해자는 무려 184명이다. 결국 법정에선 77건의 강간과 강도, 절도 등의 죄목만이 인정되어 피해자는 127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는 재판과정에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거리를 활보하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라고 말해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이 사건 이후로 언론에선 연쇄 강간 사건은 '발바리'라는 명칭을 붙이는 경향이 많아졌다. 발바바리란 연쇄강간범을 이르는 은어로, 범행을 한 후 발 빠르게 흔적을 감춘다고 해서 붙은 명칭이다.

 

대전 발바리 사건

1996년부터 대전광역시 일대에서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혼자 사는 여성들이 많은 원룸촌을 노린 성범죄가 들끓고 있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신고가 이어졌다. 이에 경찰은 1999년부터 피해자들에게서 채취한 범인의 정액과 체액을 채취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고 유전자 감식을 통해 수십 건의 사건의 범인이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나 범인 검거는 쉽지 않았다. 워낙 몸놀림이 날렵해 신출귀몰하는 데다 증거를 남기지 않는 치밀함을 보였다.

 

대전 일대에서는 누구누구가 당했다라는 식의 루머가 나돌았고, 자체적으로 성폭행 경계령을 내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언론도 이중구 사건에 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지지부진하던 수사의 실마리가 풀린 건 그로부터 6년 후였다. 2005년 1월 10일 대전광역시 대덕구 중리동에서 강간 사건 하나가 발생했다. 

 

2004년 10월 대전동부경찰서 형사게짱으로 부임한 유동하 계장은 오랜 미제로 남아 있던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을 갖고 1999년 자료부터 차곡차곡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동부서 관할인 중리동에서 침입 강간 사건이 발생한 것, 그러나 피해자들은 "창문으로 침입해 범행을 저질렀고, 범인의 옷에서 냄새가 심하게 났다"면서도 "범인이 20대 초반으로 보였다"라고 진술했다. 동일범 소행으로 확인된 다른 사건의 피해자들은 범인의 인상착의를 40대로 묘사했기에 경찰은 일단 이 사건을 별건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한 달 만에 나온 국과수의 유전자 감식 결과는 이 사건의 범인으로 이중구를 지목했다. 

 

2005년 4월 17일 용문동에서 3명이 한 번에 성폭행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체액의 유전자 역시 이중구 것으로 판명됐다. 3개월 전 사건과 달리 이 사건 발생은 언론에 포착됐다. 그러는 사이 6월 17일 논산에서 발생한 강간 사건에서 이중구의 유전자가 또다시 발견됐다. 경찰의 무능력을 비판하는 기사가 쏟아졌고 경찰의 압박감은 점점 더 커져갔다. 동부서 형사들은 전국에서 발생한 강간 사건 자료들을 모조리 스크랩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시스템 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2000~2005년 성폭행 사건 자료를 모조리 스크랩해 분석했다. 자료 분석 결과 이중구는 2003년도 6월까지 대전에서 범행을 하다 그해 7월부터 청주로 옮겨가 성폭행을 저질렀다. 그해 6월 지상파 방송의 한 프로그램은 이중구 사건과 관련한 집중 취재 내용을 1시간 동안 방송했고 이 방송 화면에 현장에서 흐릿하게 찍힌 범인의 사진까지 나왔다. 2004년부터 이중구는 범행 영역을 전국으로 넓혀갔다.

 

수사팀은 광주에서 2004년 1월 4일 발생한 강간 사건에 주목했다. 유전자가 검출되지는 않았지만 자른 수건으로 손가락을 묶는 범행 수법이 동일했던 것, 경찰은 2004년 광주 사건의 현장과 2005년 논산 사건과 현장 CCTV를 분석했고, 한 대의 차량을 두 현장 모두에서 확인했다. 그러나 유전자를 대조해 보기 전까진 이 차량의 주인이 피의자라 단언키는 아직 일렀다. 형사들은 건물 앞에 해당 차량이 주차돼 있는 것을 확인한 후 용의자 집을 찾았다. 맨발로 현관문을 열고 나온 이중구는 "날이 추우니 양말을 신고 나오겠다"며 집 안으로 다시 들어갔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창문으로 도망친 사실을 확인한 경찰은 그가 범인임을 직감했다. 

 

수사팀은 이중구의 주거지를 급습해 이중구의 대학생 아들(21)이 피우다 만 담배꽁초를 확보한 뒤 유전자 감식작업을 벌여 미리 확보돼있던 '이중구'의 유전자와 대조해 본 결과 이중구의 유전자가 서로 일치한 것으로 나타났고 재수사에 돌입한 지 1년 만인 2006년 1월 10일 그렇게 이중구로 특정됐다. 범인 특정 3일 후 지역 언론에 관련 보도가 나갔고 이중구 검거 여부는 전 국민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러던 중 2006년 1월 18일 이중구가 서울에서 대전에 있는 부인에게 전화를 건 사실을 알아낸 경찰이 형사 20여 명을 서울로 급파해 소재를 파악하던 중 이중구가 지인의 아이디를 도용, 인터넷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1월 19일 오후 4시 30분경 서울 강동구 천호동 소재의 모 PC방에서 급습했다. 검거 당시 이중구는 흰색 야구모자와 푸른색 마스크를 쓰고 상의는 밤색 무스탕, 하의는 군청색 트레이닝복 차림에 흰색 운동화를 착용하고 있었다. 이중구는 경찰에서 전국을 돌며 범행을 한 데다 피해자들이 연관성이 없는데 경찰이 어떻게 자신을 검거하게 됐는지에 대해 궁금해했다고 한다.

 

1998년 2월 7일 택시기사로 일하다가 술 취한 여성 승객을 뒤따라가 강간했던 게 첫 범행이었다. 이중구 본인은 "택시기사가 지리도 모르냐"는 식으로 피해 여성이 모욕적인 언행을 퍼부은 것이 범행 동기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범행에도 잡히지 않자 그는 한번 더, 한번 더 식으로 계속하다가 완전히 습관화 되기에 이르렀다 여성을 위협할 때만큼은 마치 자신이 왕이 된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판결은 사형이 구형됐지만 살인을 하지 않아 무기징역형이 확저오댔다. 2026년이면 20년이 되므로 가석방 대상이 된다. 다만 성범죄에 중범죄자이므로 실제로 가석방이 될 가능성이 낮다. 법무부의 방침은 원칙적으로 성범죄자에 대해 가석방을 불허하고 잇다. 특별한 사유 없이는 가석방이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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