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에 범인 이춘재에 대해 알아보자
이춘재
1963년 1월 31일
경기도 화성군 출생
키 173
학력
청룡국민학교
안용중학교
삼일산업고등학교(83년 졸업)
가족
모친, 남동생, 아내 슬하 1남(91년생)
범죄
연쇄살인, 강간살인, 연쇄강간, 강도예비
인명피해
사망 15명, 부상 10명
수감지
부산교도소
형량
무기징역
1994년 청주에서 처제를 성폭행 후에 살해해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범죄자이며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전국을 공포로 떨게 만든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다. 이 사건들을 비롯한 살인행각으로 총 15명을 살해한 그가 검거된 이후 이 사건은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으로 이름이 바뀐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판 조디악 킬러, 잭 더 리퍼로 불렸던 인물로, DNA 분석기술 발달에 힘입어 2019년에 용의자로 특정되었다. 그러나 그동안 총 10차에 걸쳐 일어났다고 알려진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은 10차의 사건이 동일범의 소행인지 정확히 확인되지 못했고 8차 사건은 모방범으로 부정확하게 수사가 종결 나는 등 당시 대한민국 과학 수사의 기술적 한계로 인해 미제 사건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이후 2019년 10월 1일 모방범으로 확정되었던 8차 사건을 포함해 화성 연쇄살인 사건 10차 모두 이춘재 본인이 저질렀다고 자백했으며 그 외 4건의 살인 사건을 자백 총 15건의 연쇄 살인과 30여 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경찰에 자백했다. 현재 이춘재가 자백한 범죄 사건들에 대해서는 진위를 확인 중이다.
현재 화성 연쇄살인 사건 10건 중 이춘재의 DNA가 발견된 사건은 5건(3차, 4차, 5차, 7차, 9차)이다. 그 외 검사했지만 발견되지 않은 사건은 2건(2차, 10차) 증거물 부족 등의 이유로 검사가 불가능한 사건은 2건(1차, 6차) 유일하게 용의자가 잡힌 사건으로 알려졌으나 후에 본인이 자백해 재심이 이루어졌고 기존의 무고한 사람도 무죄판결이 나왔으며 8차 사건 수사 당시 증거조작,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 이춘재의 상세한 자백(범인만이 알 수 있는 사실 등 자백)등으로 결국 8차 사건 또한 모방 범죄가 아닌 이춘재가 저지른 것으로 결론 났다.
2020년 12월 28일 이춘재가 저지른 사건 중 처벌받지 않은 살인 14건과 성범죄·강도 등 9건에 대한 혐의가 모두 인정되지만 공소시효가 지나 '공소권 없음'으로 처분했다.
청주 처제 살인사건
이춘재는 평소에는 소심하지만 한 번 터지면 매우 난폭한 성격이며 부모도 말리지 못할 정도로 폭력적이었다. 아내는 물론 아들까지 상습 폭행했다고 한다. 당시 겨우 2살이던 아들을 방 안에 가둬놓고 멍이 들 정도로 폭행하고 동서가 있는 자리에서 아내를 마구 구타하기도 했고, 사건 몇 달 전에도 아내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얼굴, 목, 아랫배 등을 무차별 구타해 하혈까지 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경찰 조사 당시 부인이 울며 호소한 바에 의하면 성도착증이 있어 부인을 강간하기도 했다.
결국 아내는 가출하고 이후 이춘재는 가출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무서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걸 알아둬라"라고 했다고 한다. 또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인 1월 초 동서에게 "아내가 다시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지 못하도록 문신을 새기겠다"라고 이야기했다. 이 때문에 재판부는 이춘재가 아내의 가출에 대한 보복으로 동생인 처제를 성폭행한 것으로 보았다.
사건 당일인 1994년 1월 13일 이춘재는 오후 2시 40분경 대학교 직원이던 처제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집에 들러 토스트기를 가져가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방문한 처제에게 수면제가 섞인 음료수를 먹였는데, 수면제가 약효가 나타나기 전 처제가 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집을 나가려 했고, 당황한 이춘재는 이를 막고 오후 6시 30분경 처제를 성폭행했다. 이후 이춘재는 둔기로 처제의 머리를 가격한 뒤 목을 졸라 살해했고, 오후 11시 40분경 집에서 약 880m 떨어진 철물점 야적장에 시체를 유기한 후 다음 날 장인과 함께 실종 신고를 했다.
사체가 발견된 것은 이틀 후인 1월 15일, 철물점 주인의 아내가 눈이 쌓인 차고를 청소하다가 발견했다. 당시 사체는 파란색 덮개로 덮여 있었으며 머리에는 비닐봉지와 청바지가 써져 있었고 양손은 찢어진 속옷으로 묶여 있었다. 또한 전신이 스타킹과 가방끈 등의 물품으로 감겨있었다. 이춘재는 장인을 찾아가 뭐 도와드릴 거 없냐고 물어보거나 처제가 납치된 것 같다며 장인과 함께 파출소를 찾아가 실종 신고를 하는 등 태연하게 행동했다. 이후 처제의 시체가 발견되자 경찰은 처제 가족들을 찾아갔는데 경찰에게 항의하거나 슬퍼하는 가족들 가운데 유독 무덤덤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이춘재를 보고 이상하게 여겼다고 한다. 처제가 살해되기 하루 전 처제와 통화했다는 점을 수상하게 여겨 이춘재를 심문했으나 발뺌했다.
그러던 중 옆집 주민의 증언이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는데 사건 다음날 이춘재의 집에서 아침 6시경 욕실에서 물을 바가지로 떠서 뿌리는 소리가 났으며 그다음 날 오후 4시쯤 수많은 빨래가 방바닥에 널려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에 경찰은 욕실을 정밀 감식했고 세탁기 받침대에서 이춘재가 미처 씻어내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미량의 혈액에서 처제의 DNA를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또 집에 있던 테이프 뭉치에서는 피해자의 머리카락이 발견되었고 사체를 묶은 스타킹은 아내의 스타킹과 같은 제품이었다.
처음에 이춘재는 우발적인 범행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 조사로 이춘재가 처제에게 먹이기 위해 수면제를 수십 알 준비하고, 살인 이후에 시체를 유기하기까지 겨우 4시간 2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또 사건 진술에도 처제가 저항한 내용은 "왜 이러냐" 딱 한 마디뿐이고, 그 외에는 저항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고 한다. 즉 이미 저항할 수 없는 상태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결국 계획범행은 인정되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성폭행에 대한 계획범죄만 인정됐다.
이춘재는 1,2심에서 모두 사형이 선고되었지만 대법원에서 계획범행은 인정되나 계획 살인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 판단해 파기환송했다. 결국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확정됐다. 이춘재의 사형이 1995년 또는 1997년에 집행되었다면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영구 미제로 남았을 것이다. 물론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을 그 당시 모두 자백했다면 사형이 집행 됐을 수도 있다.
이춘재는 현재 부산교도소에 복역 중이다. 무기징역을 받은 경우 20년이 지나면 가석방이 가능하며 이춘재는 모범수로 지냈으므로 가족의 증언에 의하면 가석방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춘재(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이 그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비록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가석방 심사를 통과할 가능성이 사실상 없어졌으므로 교도소에서 일평생 사회와 격리돼 있다가 죽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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