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에 대해 알아보자
범죄자 조승희
출생 1984년 1월 18일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읍
사망 2007년 4월 16일
버지니아주 블랙스버그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교
가족
아버지 조성태
어머니 김향임
누나 조선경
학력
서울신창초등학교(중퇴)
포플러 트리 초등학교
오몬드 스톤 중학교
웨스트 필드 고등학교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교
범죄
대량 살인
(본인 포함 33명 사망, 29명 부상)
충청남도 아산에서 살다가 이주하여 서울 도봉구 창동에서 거주하던 조승희의 부모는 자녀 교육을 위해 이민을 간 전형적인 한국 서민이다. 미국 현지에서도 동네 사람들로부터 평판이 좋고 세탁소를 경영하며 열심히 사는 조용하고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그의 누나는 아이비리그 명문 프린스턴 대학교를 졸업해서 펜타곤에서 군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가족들로만 놓고 본다면 나름 아메리칸드림을 이룬 모범적인 이민자 가정이라 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중학교에서 조승희는 심각한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다. 그가 낯을 많이 가리고 말이 없다는 이유였다. 결국 조승희의 성격에서 시작된 학교폭력은 인종차별로까지 변질되어 조승희를 극심하게 괴롭혔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선택적 무언증, 우울증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는 신세가 되었다. 고등학교에서도 그를 향한 폭력과 인종차별은 끊이지 않았다.
조승희의 부모는 망가진 그를 치료하고자 교회에 보냈지만 교회의 기독교 소년 단체마저도 그를 조롱하였다고 한다. 조승희는 대학 1학년 때 경영정보학을 선택했지만 2학년이 되면서 영문학으로 전공을 변경했다. 대학교에서 그는 지극히 내향적이며 겉도는 사람이 되었다.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교 총기난사 사건을 접한 니키 지오바니 교수는 곧바로 범인이 누구인지 직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
조승희는 사건을 일으키기 직전 NBC에 보낸 영상에서 자신의 모습이 담긴 일련의 스냅사진들과 '선언문' 을 낭독해 자신의 뜻을 설파했다. 그는 "너희는 오늘을 피하기 위한 기회를 수없이 많이 가지고 있었다" 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나는 내뺄 수 있었지"만 "너희가 욕보인 내 형자 자매들"과 "약하고 죄 없는 동포들을 위해" 행동했다고 밝히며 "너희 덕분에 예수처럼 죽는다"라고 선언했다. 그는 "목으로 쓰레기를 처넣는" 것과 같은 치욕적인 괴롭힘 들을 나열하면서 이 괴롭힘들이 "단지 너희들이 그럴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랬다"며 "너희는 고통을 느껴본 적이 없고", "너희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만족하지 않았다" 고 질타했다.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행동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고 말한 뒤 카메라가 꺼진다
비디오와 함께 동봉된 각 사진에는 조승희가 적은 캡션이 달려 있었는데, 자신들을 괴롭힌 불특정 다수와 그의 관념 속 '위선적인 기독교도 부유층 주류 세력'에 대한 원망과 저주, 자기연민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이 역시 대다수 언론 보도에서는 검열되었다
대학 기숙사 엠블러 존스터홀에서 여학생 에밀리 제인 힐셔를 살해한 것을 시작으로 조승희는 204, 206, 207, 211호실에서 5명의 교수와 30명의 학생을 살해하는데, 그는 언제나 강의실에 들어가서 교수를 제일 먼저 살해했고, 그 후 학생들을 살해했다. 그러나 살인 그 자체에는 집착하지 않았는데, 학생들이 힘을 합쳐서 문을 막자 포기하고 다른 곳을 간다든지, 이미 죽은 학생들에게도 마구 총을 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생존자들은 조승희가 증오도 분노도 아닌 멍 때리는 듯이 텅 빈 공허한 눈빛을 하고 있었으며, 총을 쏠 때 이렇게 말했다고 증언했다. "안녕, 잘 지냈니?"
범행 이후 조승희는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을 쏴서 자살했다. 조승희의 시신에서는 붉은색 잉크로 적힌 '이스마일 엑스(Ismail Ax)' 라는 이름이 발견되었는데 그가 언론사에 보낸 택배에서도 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오갔다. 조승희 본인의 선언문을 보면, 그는 주류 기독교 사회에서 벗어난 외부인으로서의 아이콘인 이스마엘의 자손으로 스스로를 정의하면서 자신은 미국의 테러리즘과 싸우는 안티 테러리스트(anti-terrotist)라며 이 이름에 대해 부연설명을 하고 있다. Ax를 나머지 이름으로 삼은 이유는 명확하지는 않으나, '총이든 칼이든 날카로운 물건이면 뭐든 잡고 일어나 싸워라'라는 성명서의 내용을 보면 흉기로써의 도끼를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 에도 '안티 테러리스트를 상징하는 숫자'라면서 88이라는 수를 강조하고 있는데 의미는 명확하지 않으나 조승희는 이 범행을 통해 스스로를 아이콘화하려고 시도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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